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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인 만큼 약간 잔인한 장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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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라이트 하우스 영화
- Author: 홈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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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3.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BCG25KmB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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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하우스(영화) – 나무위키:대문
1. 개요[편집] … 영화 더 위치를 연출한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2019년 신작 호러 흑백 영화[1]. 윌렘 대포와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을 맡는다. 1890년대 뉴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6/30/2021
View: 8462
라이트하우스 | 다음영화 – Daum
장르: 판타지/공포/미스터리/드라마. 국가: 캐나다, 미국.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09분. 평점: 5.9. 수상내역: 24회 새틀라이트시상식, 2020. 영화정보.
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7/16/2021
View: 9401
<영화>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 2019 / 로버트 에거스 …
윌름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이 열연한 흑백 영화. 독특한 화면비를 보여주는데 마치 올림푸스 카메라의 포서드(Four-thirds) 이미지 써클로 찍은 듯이 …
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30/2022
View: 1111
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 (2019년) – 네이버 블로그
그외 영화 리뷰 456개의 글 지난주에 지인 집에 가서 [라이트하우스 /등대]를 보고 왔습니다. 판타지 영화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고 했는데, 음험하고 처절한 상징과 비유 그리고 암시가 폭발하는 울트라 다크 심리 호러 영화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15/2022
View: 5718
‘라이트하우스’의 흑백이 의미하는 것 – 씨네21
<라이트하우스>의 감독 로버트 에거스의 전작 <더 위치>(2015)는 전세계 호러 팬들에게 극찬을 받은 영화다. 고립된 한 가족의 공포를 다루고 있지만 …
Source: www.cine21.com
Date Published: 11/18/2021
View: 1705
라이트하우스 – Google Play 영화
새로운 호러 명작 ‘더 위치’의 앞서가는 영화제작자 로버트 에거스가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인다. 1890년대, 신비롭고 외딴 뉴잉글랜드 섬에서 등대지기 두 사람(윌렘 …
Source: play.google.com
Date Published: 7/16/2021
View: 8628
라이트하우스 영화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 곳 – JustWatch
라이트하우스 영화를 볼 때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pooq, N스토어 등 다양한 동영상 서비스들 중 어떤 것이 좋을까요?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지금 바로 찾아 …
Source: www.justwatch.com
Date Published: 5/26/2021
View: 8811
라이트하우스 (2019) :: 볼 수 있는 곳 – 키노라이츠
IMDB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사이트 IMDB의 ‘평균 별점’. 라이트하우스. The Lighthouse ·2019. light-green. 82.81%. 90% ·. 7.5 ·. 3.6. 별로예요 좋아요. 찜하기.
Source: kinolights.com
Date Published: 12/7/2021
View: 6757
라이트 하우스 – 브런치
라이트 하우스 · 남근,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환상 · 술과 환상에 취하는 밤 · 바다 새를 죽이면 불운이 닥쳐온다 · 동명의 사슬에 묶인 영혼 · 프로테우스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4/21/2021
View: 2333
<영화>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 2019 / 로버트 에거스) 해석과 결말
보고 읽고 만들고 <영화>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 / 2019 / 로버트 에거스) 해석과 결말 무인도의 유령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윌름 데포와 로버트 패틴슨이 열연한 흑백 영화. 독특한 화면비를 보여주는데 마치 올림푸스 카메라의 포서드(Four-thirds) 이미지 써클로 찍은 듯이 가로 세로의 비율이 대략 4:3 정도다. 외딴 섬의 등대에서 일하던 두 남자가 묘한 심리적 대립을 겪다가 폭풍우에 고립되어 둘 다 광기어린 모습을 보이는데 현실과 초현실(환상)을 마구 뒤섞어놓아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신화적 은유와 상징이 있다는 생각으로 정리해 보았다. 두 남자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섬의 등대에 도착한다. 보급품과 짐을 풀고 젊은 사내 ‘이프레임 윈즐로'(나중에 본명이 ‘토마스 하워드’라고 정정한다 / 로버트 패틴슨)는 숙소의 침대 쿠션 속에서 인어 조각상을 찾아내고 이를 챙긴다. 나이 든 고참 ‘토마스 웨이크'(윌름 데포)는 자칭 ‘바다의 사나이’로 한쪽 다리를 전다. 이들이 서로 통성명을 하는 것은 극중 시간이 제법 흐른 후에나 이루어진다. 시작부터 두 남자는 친절이나 다정함, 배려심과는 거리가 먼 성격임을 보여준다. 패틴슨의 손에 쥐어진 인어 조각상, 죽음의 두려움이 우리를 해저에 묻으려 한다면 하나님이 해일을 들으시고 간절한 우리의 영혼을 구해주시길. 토마스 웨이크의 건배사 4주간 근무 첫째 날, 저녁 식사시 늙은 사내가 신참에게 건배를 권한다 신참(로버트 패틴슨)은 건배를 사양하지만 늙다리 고참(윌름 데포) 역시 끝내 건배할 것을 요구하며 옥신각신한다. 두 사람만 존재하는 공간에서 첫날부터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두 사람의 대립과 더불어 ‘fog horn'(바다에 안개가 끼었을 때 조심하라고 울리는 고동)의 소리가 청각 신경을 은근히 건드린다. 패틴슨이 한발 물러나 데포의 질문이나 강요에 ‘아이 써(Aye sir!)라고 대답하는 것은 <캐러비안 해적>에서 들어왔던 표현으로 여기선 절대 권력 앞에서 아직은 무기력한 신참의 복종심을 보여준다. 등대와 숙소, 부속 건물들은 제작팀이 직접 세트를 지어 촬영했단다. 흑백 영상의 계조를 감상할 수 있다. 고참은 등불 관리와 식사를 준비하고 신참(이하 패틴슨)은 대부분의 일과를 도맡는데 이 노동 강도가 빡세다. 그럼에도 고참(이하 데포)은 패틴슨의 생각없음과 게으름을 탓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지만 사는 세상이 다른 것이다. 늦은 밤, 패틴슨이 해변을 거닐던 중 바다에 떠다니고 있는 나무 둥치들을 발견한다. 나무 둥치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더니 그 사이로 남자의 시신이 떠있는 모습이 점점 확연해지고 패틴슨은 이를 보고 놀라 이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물속에는 어렴풋이 인어가 유영하고 있다. 이는 패틴슨의 꿈이다(인간의 원죄, 불안한 자의식을 표현한 것 이겠지…). 모니터의 브라이트와 콘트라스트를 조금 조정하고 봐야 암부 표현이 살아나더라. 바다 위의 시체는 패틴슨이 허드슨 베이에서 목재 켜는 일을 할 당시의 ‘이프레임 윈즐로'(패틴슨은 그의 죽음을 방조했고 이후 그 이름을 자신의 가명으로 사용했다)의 환영일 것이다. 인어 조각상은 먼저 근무자가 남긴 것으로 이 지역이 파도가 높고 폭풍이 잦아 사고가 많은 해역임을 암시한다. 한편으로 인간들을 유혹해서 바닷 속에 수장시킨 ‘오딧세이’의 사이렌을 인어로 형상화 했다고 볼 수 있다. 패틴슨과 몇 번 조우하는 갈매기, 패틴슨의 불안한 의식을 자극하다가 끔살당한다. 패틴슨은 일하다 외눈박이 갈매기와 마주친다.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녀석은 밤에 창가에 서성이더니 패틴슨이 등대 보수 작업중에도, 그리고 식수 보관 수조에서도 마주친다. 패틴슨의 억압된 무의식을 성가시게 불러내는 존재로 보인다. 데포는 갈매기를 죽이면 불운을 부른다고 해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갈매기에겐 바다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부연한다. 갈매기는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림으로 대체)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데포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던 패틴슨은 자기를 쫒아다니는(?) 외눈박이 갈매기를 낚아채 시멘트에 패대기를 처버린다. 그렇게 갈매기가 죽은 날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폭풍의 전조가 드리운다. 인어, 역시 환영이다. 패틴슨의 억압(물론 성적으로)을 상징한다 패틴슨은 인어와 성교를 갖는 상상 속에 자위 행위를 한다. 그리고 자괴감이 들었는지 인어조각상을 두 조각 낸다(왜, 인어 조각상만 주고 살아있는 인어는 안 주는 거냐구!). 데포의 기이한 행동(등불 앞에서 나체로 서 있다거나 자면서 성교하듯이 엉덩이를 움직이는)은 패틴슨이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패틴슨에게 데포는 모든 것(불과 여자는 원래 神의 것이다)을 가진 자로 보여지는 건 아닐까. 데포는 패틴슨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혹시 갈매기의 죽음도? 폭풍우가 몰아치고 두 남자는 자신들을 태우고 갈 보급선을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4주간의 동거 계약은 더 연장되어져야 할 것 같은데 패틴슨은 등대에서의 생활에 질식해 가고 있다. 패틴슨이 섬을 빠져나가려고 보트를 해안가로 밀고 있다. 패틴슨이 보트로 섬을 빠져나가려 하자 데포가 도끼를 들고 나타나 보트를 부셔버린다. 이는 신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시도를 막아서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신은 자신을 숭배하는 인간을 필요로 한다. 숭배자가 없는 신이란 얼마나 초라하던가. 데포는 패틴슨에게 “난 너의 상상의 일부일지 모른다”는 소릴하기도 한다. (역시, 술은 병나발이 최고지!) 두 남자의 ‘알콜 배틀’이 벌어진다. 처음에 술을 거부하던 패틴슨은 섬이 외부 세계와 고립되자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탐닉한다. 알콜이 들어가면서 엄격한 데포에게 반항을 하기도 한다. 데포는 가끔 패틴슨의 주정을 받아주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권위는 양보하지 않는다. 술은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잠깐의 쾌락과 일탈일 뿐 계속될 순 없다. 데포와 패틴슨은 끊임없이 반목하고 대립한다. 문제는 욕망과 금지다. 이해를 하는 듯 싶다가도 돌변하여 으르렁 거리기를 반복하는 두 남자는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만들어준 바닷가재 요리가 형편없다는 패틴슨의 말에 노발대발하는 데포의 모습은 자신의 은총을 거부하는 인간에 대한 분노로 보일 지경이다. 신은 자신만의 세계를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을 뿐더러 그 변화무쌍한 변덕으로 인간을 괴롭힌다.신의 변덕에 기진한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반란을 꿈꾼다. 여기서 등대의 등불은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의 비유일 게다. 데포의 또다른 모습, 이마와 몸에 조개, 따개비, 해초들이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트리톤’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의 아들로 알려진 트리톤은 소라 고동을 불고 다니는데, 등대의 포그혼foghorn 소리는 그 고동 소리의 은유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는 이런 신화적 요소를 마구 섞어 놓았는데 이는 감상시 문화적 갭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 영화 초반부 데포의 모습은 『모비딕』의 ‘에이햅 선장’으로 오버랩되는 장면을 배치해 두기도 했다. 패틴슨이 트리톤으로 변한 데포의 얼굴을 가격하는 장면에서 크라켄으로 보이는 거대 문어의 다리 같은 것이 보인다. 패틴슨 역시 이제 괴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본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는 트리톤(신의 세계)에 대한 반란으로 볼 수 있겠다.(뭐, 아님 말구…) 패틴슨은 괴물에게 빙의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패틴슨이 데포를 두들겨 팬다. 이때 데포에게서 자신이 살해한 ‘이프레임 윈즐로’의 모습이 잠깐 겹친다. 윈즐로는 인간의 이기심, 악한 면을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보인다. 패틴슨이 데포를 개처럼 등대 밑에 끌고가 그를 생매장할 때 데포의 중얼거림은 신을 버린 인간에 대한 저주일테고. 아, 윌름 데포의 연기는 무섭더라…. 땅에 묻혀 있을 줄 알았던 데포가 도끼를 들고 쫒아와 패틴슨의 어깨를 찍는다. 패틴슨은 마지막 반격을 가해 데포의 숨을 완전히 끊어버린다. 패틴슨의 얼굴은 데포의 피가 뒤덮여 마치 악마赤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신들의 영역인 등불 앞에 선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쟁취했다고 믿었지만 패틴슨은 이내 추락하고 만다. ‘파에톤의 추락’에서 보듯이 신은 인간의 오만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스등, 반사경, 프레넬 렌즈로 이루어진 19세기 말 등대용 서치라이트가 재현됐다. 데포의 열쇠를 들고 등대의 꼭대기, 광원 장치 앞에 다다른 패틴슨은 내부를 주시한다. 그의 표정이 바뀌고 입이 크게 벌어진다. 웃는 듯 싶더니 비명을 지르는 것도 같다. 금기를 어긴, 신의 물건을 훔친 인간에게 주어지는 형벌은 프로메테우스가 겪는 형벌과 닮은 꼴이다. 신과 인간의 운명은 이처럼 조금 다르게 변주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패틴슨은 해변가 바위에 쓰러져 있고 그 위로 갈매기가 그의 내장을 쪼고 있다. 등대에서 나딩굴어 쓰러진 패틴슨의 몸 위에 갈매기 몇마리가 모여 있다. 패틴슨은 산 채로 갈매기들한테 뜯어 먹히고 있다. 데포의 저주(바다의 신이 널 치게 하겠다!)는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The End) 몇 줄 촌평>> ‘나는 욕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라는 시의 제목 뽈 엘뤼아르 을 기억한다. 가부장은 작은 神 그 만이 조상과 부족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신전에 출입할 수 있는 열쇠를 갖는다 이다. 고참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란 그리고 성모마리아의 기둥 서방이란 불경한 소리는 군대 고참에게 듣게 된다. 가부장적 위계가 갖는 힘은 그에 맞먹는 욕망을 축적시킨다. 인간은 이 금지의 영역을 막연하고 집요하게 동경하여 쫒는다. 데포가 식사 시간에 건배를 권하는 장면은 자신의 ‘의식 Ritual ‘에 참여하라는 강요다. 패틴슨은 그런 의식에 참여할 마음이 전혀 없어 식수로 대신하지만 식수는 이미 오염됐다. 식수의 오염은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수조를 오염시킨 갈매기로 인해 패틴슨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술은 일탈이고 고해성사이며 환영이다. 데포는 일탈로 그의 욕망을 와해시키고 고해성사로 그의 죄를 재각인 시킨다. 패틴슨의 환영은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불러오고 데포의 환영은 주술적이고 예언적으로 작동한다. 패틴슨은 근본 없이 떠도는 존재로 여겨진다. 캐나다 허드슨 만에서 나무를 벌목하다 사정으로 인해 이곳으로 흘러든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윌름 데포는 산전수전 다겪은 뱃사람이다 그리고 바다는 남자의 세계다 . “바다, 나에겐 그것 뿐이다”라고 말한다. 잃어버린 한 쪽 다리 때문에 등대지기 wickie 가 되었지만 여전히 바다를 비추고 지키는 일을 한다. 그가 치룬 댓가는 가족을 잃었다는 것이다. 데포가 보기에 돈은 하찮은 것이다. 자신이 수행하는 신성한 임무와는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영역을 넘볼지 모르는 패틴슨을 감시한다. 애초에 주종관계는 영속적이지 않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패틴슨도 끊임없이 데포의 영역을 훔쳐본다. 신전의 열쇠를 훔치고자 한다. 그를 감시하고 조롱하던 신의 사자 외눈 갈매기 를 살해함으로써 그의 욕망은 걷잡을 수없이 분출하지만 치명적으로 위험한 폭풍을 동반한다. 고립된 세계에서 가부장과 가사 노동자 중재할 자는 없다. 술은 이 두 사람을 묶어주지만 임시적일 뿐이다. 패틴슨이 데포를 생매장하고 결국 도끼로 살해하는 것은 오디푸스 신화의 또 다른 판본아닌가. 그는 신의 세계로 입성한다. 하지만 신의 예언과 저주가 실현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자도 그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다. 2시간 동안 너무 강렬했던 두 사람, 이제 좀 훈훈한 모습을 보자.^^;; 살짝 이원복 선생의 feel이 느껴지는 삽화 혹은 숨은 그림 찾기? 인쇄
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 (2019년)
그외 영화 리뷰 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 (2019년) 사자왕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라이트하우스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윌렘 대포, 로버트 패틴슨 개봉 미개봉 지난주에 지인 집에 가서 [라이트하우스 /등대]를 보고 왔습니다. 판타지 영화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고 했는데, 음험하고 처절한 상징과 비유 그리고 암시가 폭발하는 울트라 다크 심리 호러 영화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은데,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 였던 것을 깜빡 했던 것 같습니다. “아~ 요즘 매일 인보 영화(인내력으로 보는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 있어서 그냥 밝은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이게 뭐가 판타지 입니까? ㅠㅠ 그래도 행님이니 참겄소.” 개인적으로 인어가 등장을 하는 다크 한 판타지로 예상을 했는데…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미완성 단편 “등대”를 예상했는데 방심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명의 등대지기가 교대를 해주기 위해 외딴섬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영상(위의 이미지)이 강렬하게 다가왔는데요. 두 배우가 뻘쭘하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느낌으로 서있는 샷은 무성 영화의 코믹한 느낌을 주지만 그 반대로 차가운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아~ 왜?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느낌이 나는 것이지? 아~ 이거~ 호러 심리 스릴러? 아~ 안되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수원까지 걸어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호러나 초 강력 심리 스릴러는 아닌데…라고 생각을 하면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압도 당해서 결국 전철을 타고 복귀… 우위씨~ 그럼 영화의 스타일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고립된 등대에서 전혀 마음이 맞지 않는 두 남자가 함께 하게 되는데. 태풍까지 몰아치면서 두 사람의 고립(혹은 대립)은 끝까지 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코 쉽지가 않은데요. 제 이야기는 관객 입장에서 말이지요. 주인공이 미쳐 간다는 것을 상징하고 암시하는 신들이 판타지와 같이 뒤범벅이 되는데… 윌렘 대포의 연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력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리뷰를 쓰다 보니 갑자기 블랙아웃이 되면서 스토리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리뷰를 미루다가 어제 포인트를 다시 보고 쓰는 스포일러 있는 리뷰 입니다.)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또 전혀 맞지 않는 선배와 고립 되게 된다면? 세상에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큼 미치게 만드는 경우도 없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경우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미쳐가게 됩니다. 정말 시쳇말로 “로버트 패틴슨이 미쳤다(연기가 미쳤다)”는 말 외에는 다르게 설명이 되지 않는데요. 광기의 연기의 기존 고수와 신예 고수가 연기로 합을 맞추는 느낌이어서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심리 스릴러를 꼽으면 역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인데요. [셔터 아일랜드]의 경우 미친 남자의 속 사정을 들여다보지만 추리하는 느낌이 강해서 심리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요. 이 영화는 미쳐가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어 심리적으로 힘든 영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상징, 암시가 상당히 강력한 영화인데요. 개인적으로 악몽과 같은 시간을 경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교훈은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과 고립되는 것은 마마 호환 보다 더 무섭다??? 사실 결혼도 잘 맞지 않는 사람과 하게 되면 지옥문이 열린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 영화는 일단 강심장보다는 호기심이 필요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강심장이 필요한 공포스러움과는 달리 다음 장면을 보고 싶은 호기심으로나 견딜 수 있는 곤혹스러운 상황과 여러 번 마주해야 되니 말입니다. 영화는 여러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니 도덕적이고, 착한 내용만 담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요.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객들의 선택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로버트 패틴슨과 윌럼 대포의 연기는 강렬하기만 한데요. 이들의 연기를 받쳐주는 영화의 속도와 무드 그리고 소리까지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호불호를 떠나 이들의 연기는 가히 최고라고 말하게 되었는데요. 인어 목각 인형 ??? … 사쟈 슈나이더의 패로디(갑자기 뜬금 없는 웃음이…)에… 마지막 잔혹한 장면까지… 분…분명… 모두를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 마니아나 영화 공부를 하는 분들에게는 배우 둘의 초 울트라 강렬 연기에 비유와 상징 그리고 암시가 제대로 활용한 영화로 각인 될텐데요. 그래서… 여기까지… 끝. 갑자기??? 영화는 현재 btv에서 1,540원에 보실수 있습니다. 몬스터 헌터와 스푸트닉은 가격이 내려갈때 보려고 합니다. 영화를 어디서 보냐고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언급합니다. 그리고 고전은 거의 유튜브에서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튜브에 에드가 앨런 포우의 미완성 단편 “라이트하우스”를 읽어주는 영상이 있으니 확인해보세요. 묘하게 암울한 분위기는 닮은 것 같습니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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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호러 명작 ‘더 위치’의 앞서가는 영화제작자 로버트 에거스가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인다. 1890년대, 신비롭고 외딴 뉴잉글랜드 섬에서 등대지기 두 사람(윌렘 대포와 로버트 패틴슨)이 겪는 몽롱하고 환각적인 이야기. 다가오는 폭풍은 그들을 집어삼킬 듯 위협하고, 안개 속에서 기묘한 환영을 본 두 사람은 서로 위험할 정도로 불안정해졌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라이트 하우스
폭풍에 갇힌 육체는 영혼을 쪼아 먹는 새를 피할 수 없습니다. 로버트 에거스의 ‘라이트 하우스’는 미칠 것 같은 인간과 이미 미쳐 신화가 된 인간에 대한 전설입니다. 고립된 섬에 등대지기로 보내진 두 남자의 이야기가 악몽처럼 시작되는 ‘라이트 하우스’는 깨어났을 때가 더 무서운 몽중몽 상태의 공포를 자극합니다. 4:3 비율의 화면은 필사의 몸부림을 가두고, 회색의 스펙트럼은 정해진 운명을 직조하지요. 고대 신화의 비극에 기댄 로버트 에거스의 영화문법은 선택이 아닌 필연처럼 다가옵니다. 들끓는 욕망으로 붕괴한 인간을 미해결 상태로 남기며 영화는 끝에서 신화를 불러냅니다. 애초에 인간은 이해불능의 욕망을 해석할 수 없고, 신화는 그 무력감으로 쓰인 것이니까요.
1890년대 뉴 잉글랜드의 외딴섬.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와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이 4주간의 등대지기 업무를 시작한다. 등대 관리 책임자인 토마스는 에프라임에게 청소나 수리 같은 허드렛일을 시키며 절대 등대 일을 맡기지 않는다. 에프라임은 술에 취해 헛소리를 내뱉고 명령을 일삼는 토마스에게 불만이 가득하다. 그중, 비명을 지르는 바다 새와 뱃고동 소리에 신물이 난 에프라임이 바다 새와 대척하는 일이 발생한다. 토마스는 바다 새 전설을 말하며 에프라임에게 절대 바다 새를 죽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에프라임은 고된 노동과 참을 수 없는 토마스의 존재에 이성을 잃고 마는데. 때마침 닥친 폭풍에 보급선이 오지 않자 토마스와 에프라임은 섬에 고립된다. 폭풍에 갇힌 기압계는 움직이지 않고, 구조를 기다리던 두 남자는 서로의 심연을 바라보다 광기에 휩싸이고 마는데
남근,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환상
‘라이트 하우스’의 등대는 곧 남근입니다. 수직으로 비치는 굳건함과 사정의 조건을 은유하는 계단이 그렇습니다. 토마스와 에프라임이 등대에 집착하는 까닭은 등대가 곧 권력이며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등대를 전유하는 토마스에 대한 에프라임의 반발과 분노는 거세된 남근에서 오는 열등감이자 환상의 동력이지요. 더욱이 에프라임은 토마스의 명령으로 등대 관리와는 먼 허드렛일을 떠맡습니다. 인상적인 건, 에프레임의 노동이 등대의 불을 밝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광휘는 토마스에게 독점되지요. 실체가 없는 노동으로 에프라임은 욕망의 집합체인 등대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남근에 대한 정신적, 신화적 해석을 따르자면, 토마스와 에프라임은 권력과 계급이 뚜렷한 부자 관계인 것이지요. 에프라임은 등대를 통해 권력을 전복하려 애쓰고, 토마스는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에프라임의 ‘거세 공포’를 자극합니다.
그래서 ‘라이트 하우스’의 앵글은 에프라임을 따라선 수평을, 토마스와 욕망의 대상을 따라서는 수직으로 이동합니다. 이 규칙이 전복되는 유일한 순간이 있습니다. 에프라임이 잠든 토마스를 지붕 위에서 훔쳐볼 때 에프라임의 시선이 토마스의 엎드린 엉덩이를 향합니다. 성적인 긴장감을 유발하는 이 기묘한 시선은 권력의 전복이자, 에프라임이 이루고자 하는 환상입니다. 토마스가 에프라임을 가정 내 ‘여성’의 위치로 끌어내렸던 것처럼 부부 관계의 내밀한 권력 구조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남근을 소유한 토마스에 대한 에프라임의 경쟁의식이 프로이트의 동일시를 암시한다면, 가정 내 권력 구조는 성적 케미스트리를 유발합니다. 말하자면, 악몽 같은 <결혼 이야기>인 것이지요.
술과 환상에 취하는 밤
토마스는 술과 등대의 불빛에 늘 취해있습니다. 제정신일 때 그는 엄격한 선장처럼 에프레임을 대하지요. 반면 술에 취했을 때는 헛소리를 늘어놓을지언정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에프라임은 바다의 신을 흉내 내고 미스터리에 대해 늘어놓는 토마스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영화 초반 에프라임은 술을 멀리하고 돈을 벌겠다는 자신의 목적에 전념하려 합니다. 마치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려하는 것처럼요. 에프라임에게 등대지기란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습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빛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그의 욕망은 토마스에 의해 좌절되고 토마스의 욕망은 매번 그를 앞지릅니다.
좌절감과 고독, 분노는 에프라임을 술의 취기로 이끕니다. 토마스와 함께 과음하는 에프라임의 모습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들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에프라임은 토마스의 삶과 욕망에 스며들게 됩니다. 욕망이 더 큰 욕망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지요. 그렇게 에프라임의 환상이 시작됩니다. 베갯잇에서 발견한 인어상을 품에 안은 에프라임은 파도에 밀려오는 한 남자의 시체를 환각처럼 마주합니다. 더욱이 에프라임은 토마스가 올라간 등대를 훔쳐보다 정액으로 은유되는 점액질과 바다 괴물 크라켄의 흔적을 목격합니다. 크라켄은 미지의 바다가 낳은 공포의 환상으로 전설 속 괴물이지요. 등대에 뿌려진 크라켄의(또한 토마스 웨이크이기도 한) 정액은 등대가 주는 환희와 쾌락의 메타포로 광원에 대한 에프라임의 광기 어린 집착을 암시합니다. 돈을 벌겠다는 목적도, 욕망도 이제 에프라임 윈슬로의 것이 아닙니다. 술과 환상은 그가 만들어낸 인격과 자아를 벗겨내지요. 빈약한 자아 속에서 에프라임은 이성을 잃어갑니다. 가치 없는 노동과 빼앗긴 쾌락에 의한 분노가 그 공백에 해일처럼 들이닥칩니다.
바다 새를 죽이면 불운이 닥쳐온다
토마스는 에프라임에게 죽은 선원들의 영혼이 담긴 바다 새를 죽이면 불운이 닥쳐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에프라임은 참을 수 없는 토마스의 존재와 해조의 비명에 괴로워하다 결국 바다 새를 죽이게 되지요. 이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시 <노수부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한 선원이 알바트로스 새를 죽이자 배에 갈증이, 그리고 죽음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이는 식수대에 빠진 죽은 새와 폭풍우로 식수를 잃게 될 주인공들의 곤경을 암시합니다. 토마스의 말대로, 바다 새를 죽인 에프라임 때문에 폭풍이 몰려왔을지도 모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기압계는 폭풍에 갇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보급선은 오지 않고, 식량은 모두 젖었습니다. 고립된 섬에서 서로를 미치게 하는 두 남자의 전설이 시작된 것이지요.
토마스와 잔뜩 독주를 마신 다음 날, 에프라임은 암초 위에 누워있는 인어를 발견합니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던 세이렌의 환상이지요. 인어의 나체를 훑는 에프라임의 손에는 분명한 색욕이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인어가 눈을 떠 비명을 지르자 에프라임은 달아납니다. 에프라임의 육체는 달아났지만 그의 정신은 일찍이 인어상에 매혹되었지요. 에프라임은 오디세우스처럼 돛대에 묶이지도 않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노를 젓는 선원들도 없습니다. 이렇듯 세이렌 환상과 인어상은 에프라임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지요. 인어상을 문지르며 맹렬히 자위하는 에프라임이 세이렌과의 성교를 상상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욕망의 노예가 된 에프라임은 바다에 수장될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의 모습으로 에프라임을 꾸짖는 토마스의 번개 같은 예언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리 작은 네 영혼일지라도, 더 이상 윈슬로가 아니라 이제 바다 그 자체다”
동명의 사슬에 묶인 영혼
폭풍 한가운데, 술에 취한 두 남자가 누워있습니다. 에프라임은 자기의 진짜 이름을 “토마스 하워드”라고 밝히며 이 섬에 이르게 된 사연을 털어놓지요. 그는 캐나다 벌목꾼 출신으로 자신을 더러운 개라고 부르던 상사를 죽여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그 상사의 이름이 “에프라임 윈슬로”였던 것이지요. “토마스”란 이름의 어원이 “쌍둥이”인 것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토마스 웨이크와 토마스 하워드는 사실 처음부터 동명의 사슬에 묶인 운명인 셈입니다. 다양한 지점에서 서로를 지배하려 하는 웨이크와 하워드의 충돌은 말하자면, 한 인간의 그림자인 것이죠. 다정하게 춤을 추다가도(여성성), 이내 몸싸움을 벌이는(남성성)이 그렇습니다. 더 깊게 파고들자면, 등대를 차지한 토마스 웨이크는 인간의 고등 정신, 즉 이성과 정신 통제(에프라임을 통제하는 것)이며 환상과 욕망에 사로잡힌 토마스 하워드는 그 영혼의 그늘입니다. 또한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것처럼, 하워드의 노동이 없었다면 웨이크는 등대의 환희를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웨이크에 대한 하워드의 반항은 이성에 대한 육체의, 빛에 대한 어둠의, 남성성에 대한 여성성의 계급 반란인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 영혼을 단적으로 해부할 수 없듯, 이들의 계급적 위치가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섞일 듯 섞이지 않고 웨이크를 위협하는 하워드의 모습으로 전환되기도 하지요.
프로테우스 신화와 동성애
‘라이트 하우스’의 환상적이고 상징적인 언어와 이미지는 그리스 고전 신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윌렘 대포가 연기한 토마스 웨이크의 기묘한 이미지와 성질은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를 떠올리게 하지요. 바다의 노인이라고도 불린 프로테우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보며 오직 진실과 예언만을 말합니다. 더욱이 그는 변화무쌍하며 상황에 따라 변신을 일삼습니다. 요리가 맛없다며 불평하는 하워드(에프라임)에게 분노하는 웨이크의 밀도 있는 대사는 그의 신화적 상징성을 부각합니다. 에프라임의 환상 속 괴이한 웨이크의 모습은 그가 절대적 진실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변신하는 프로테우스임 암시하지요. 하워드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왜 비밀을 털어놨냐는 웨이크의 엄숙한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됩니다.그렇게 하워드는 죄인의 얼굴을 밝히는 토마스 웨이크의 등대 같은 눈, 더 나아가 신의 눈에 발각되지요.
이 장면은 독일 작가 사스카 슈나이더의 작품
의 레퍼런스입니다. 한 사내의 눈이 내뿜는 광선은 신의 심판처럼 매섭지요. 등대가 천국, 즉 절대자의 구원을 의미한다면 젊은 토마스의 빛에 대한 집착은 살인에 대한 신의 용서와 구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늙은 토마스, 즉 프로테우스를 붙잡고 속죄 없는 구원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지요. 붙잡힌 프로테우스는 신화처럼 예언과 진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의 눈에 읽힌 하워드의 죄는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그는 죄인에게 합당한 비극적인 운명을 예고합니다. 하워드와의 몸싸움 끝에 밧줄에 묶여(이 역시 프로테우스를 붙잡는 방법입니다) 매장당하던 웨이크가 “넌 벌 받을 것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20세기, 남성성의 섹슈얼리즘으로 시대의 한계에 도전한 사스카 슈나이더의 작품 세계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동성애자였던 슈나이더는 남신의 아름다움을 절찬하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희망했지요. 이 레퍼런스를 따른다면, 두 남자의 케미스트리를 동성애적 담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워드의 성교 환상에 삽화되던 웨이크의 얼굴과 웨이크가 인어에서 크라켄의 형상으로 변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술에 취해 춤추던 두 사람이 입을 맞출 뻔했던 장면도 놓쳐선 안됩니다. 또한 등대라는 남근의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비치던 하워드의 젊은 육체는 사스카 슈나이더의 정신을 떠올리게 하지요. 그렇다면 토마스 하워드에게 등대란 억압받지 않은 순수한 욕망입니다. 과거의 죄와 사회적 금기에 옥죄이던 그의 영혼은 등대의 순결한 빛을 통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를 미치게 한 것은 욕망과 반대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바로 그 운명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성성으로 은유되는 거친 자연과 대립하던 하워드는 금기된 자유를 맛보고 프로메테우스적 비극에 이르게 됩니다. 전통적인 자연(신)에 반기를 든 인간의 최후이지요.
프로메테우스의 비명
이제 하워드(에프라임)의 광기는 파멸과 가까워집니다. 웨이크의 목에 밧줄을 건 하워드는 그를 개라고 부르며 짖으라고 명령하지요. “난 네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존재일지도 몰라”라는 웨이크의 앞선 대사처럼, 두 남자의 영혼이 욕망의 반죽에 한데 버물린 것입니다. 이제 하워드는 더러운 개가 누구인지, 도끼로 구조선을 부서뜨린 게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워드를 무급 해고하겠다는 웨이크의 일지는 진짜였을까요? 그러나 현실을 더 굳게 잡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워드가 도끼로 웨이크의 머리를 내려쳐 죽임으로써 이성과 정신의, 빛과 어둠의 계급투쟁이 끝난 것이지요. 피에 물든 하워드가 등대를 오릅니다. 등대의 광선이 열리고 하워드의 손이 그 벌려진 틈, 카오스(Chaos)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빛은 태초에 텅 빈 상태이며, 카오스에서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보나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혼돈의 상태에서 하워드는 바다 새처럼 비명을 지르고 추락합니다.
그렇게 토마스 하워드는 이카루스처럼 추락해 프로메테우스의 최후를 맞이합니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의 영웅이 되고자 했던 프로메테우스의 욕망은 초월자에 대한 도전이자 오만으로 그려지기도 하지요. 그러니 카오스(신들이 잉태되는 자궁이기도 한)를 엿본 하워드는 이카루스의 날개가 타듯 눈을 잃고 추락합니다. 오만하여 자신이 삼킬 수 없는 욕망을 탐한 인간의,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신의 형벌입니다. 해금(解禁)된 욕망은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신화라면 하워드는 욕망에 미쳐 신의 권위에 도전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인 것이지요. 또한 하워드가 추락한 등대의 나선형 계단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달팽이의 뿔과 같습니다. 이는 영 겹의 시간 동안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힌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은유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비명을 삼킨 코카서스 산의 골짜기처럼, 하워드의 육체 또한 해우와 바위에 갇힐 것입니다. 하지만 하워드는 바다 새에게 내장을 쪼아 먹히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습니다. 영혼의 탈진에서 오는 단순한 묵음이겠지요. 그럼에도 귀스타브 모로가 그린 비명을 지르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이 자연히 떠오릅니다. 강인한 신념으로 비명을 삼켜낸 그처럼, 하워드의 묵음은 찰나의 환희라도 간직하겠다는 어리석은 인간의 투쟁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넝마가 된 육체를 빠져나온 영혼이 바다 새의 입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미칠 것 같은 인간, 미쳐버린 신화
절묘한 신화적 상징과 다양한 메타포로 빗어진 ‘라이트 하우스’는 표현주의 사조의 마지막 필름처럼 다가옵니다. 무겁고 극적인 그림자, 그로테스크한 미장센, 연극적 밀실이 주는 폐쇄적 공포감, 심연을 파헤치는 대사는 섬이라는 현실의 비현실성을 극단화합니다. 미학적 관습에 대한 반동이었던 표현주의 기법은 ‘라이트 하우스’의 모반(謀反)적 어조와 유기적으로 얽혀있습니다. 그러니 광휘와 대조되는 어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환상과 악몽의 색, 흑백뿐입니다. 등대섬의 흉흉한 파고에 물러서지 않는 윌렘 대포와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 또한 ‘라이트 하우스’의 맹렬한 분위기에 힘을 더합니다. 윌렘 대포는 종잡을 수 없는 토마스 웨이크의 성질과 힘을 영혼까지 과시해냅니다. 하워드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은 이미 넘어선 자신의 연기적 한계를 또 한 번 넘어섰습니다. ‘라이트 하우스’는 그의 최고 연기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끝없던 뱃고동 소리가 사라진 지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사라지자 섬이, 환상이, 빛이, 욕망이 두 남자를 광기로 몰고 갑니다. 미칠 것 같은 인간을 거울처럼 대면하다 결국 한 인간이 신화에 이릅니다. 미칠 것 같은 인간이 미쳐버린 신화가 된 것이지요.
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 (2019년)
그외 영화 리뷰 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 (2019년) 사자왕 ・ URL 복사 본문 기타 기능 공유하기 신고하기 라이트하우스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윌렘 대포, 로버트 패틴슨 개봉 미개봉 지난주에 지인 집에 가서 [라이트하우스 /등대]를 보고 왔습니다. 판타지 영화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려고 했는데, 음험하고 처절한 상징과 비유 그리고 암시가 폭발하는 울트라 다크 심리 호러 영화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봐서 더 그랬던 것 같은데,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영화 였던 것을 깜빡 했던 것 같습니다. “아~ 요즘 매일 인보 영화(인내력으로 보는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 있어서 그냥 밝은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이게 뭐가 판타지 입니까? ㅠㅠ 그래도 행님이니 참겄소.” 개인적으로 인어가 등장을 하는 다크 한 판타지로 예상을 했는데…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우의 미완성 단편 “등대”를 예상했는데 방심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명의 등대지기가 교대를 해주기 위해 외딴섬으로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영상(위의 이미지)이 강렬하게 다가왔는데요. 두 배우가 뻘쭘하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느낌으로 서있는 샷은 무성 영화의 코믹한 느낌을 주지만 그 반대로 차가운 느낌도 지울 수 없습니다. 아~ 왜?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느낌이 나는 것이지? 아~ 이거~ 호러 심리 스릴러? 아~ 안되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수원까지 걸어와야 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호러나 초 강력 심리 스릴러는 아닌데…라고 생각을 하면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압도 당해서 결국 전철을 타고 복귀… 우위씨~ 그럼 영화의 스타일을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고립된 등대에서 전혀 마음이 맞지 않는 두 남자가 함께 하게 되는데. 태풍까지 몰아치면서 두 사람의 고립(혹은 대립)은 끝까지 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코 쉽지가 않은데요. 제 이야기는 관객 입장에서 말이지요. 주인공이 미쳐 간다는 것을 상징하고 암시하는 신들이 판타지와 같이 뒤범벅이 되는데… 윌렘 대포의 연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력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는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런데 리뷰를 쓰다 보니 갑자기 블랙아웃이 되면서 스토리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리뷰를 미루다가 어제 포인트를 다시 보고 쓰는 스포일러 있는 리뷰 입니다.)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고, 또 전혀 맞지 않는 선배와 고립 되게 된다면? 세상에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만큼 미치게 만드는 경우도 없다고 하는데요.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경우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미쳐가게 됩니다. 정말 시쳇말로 “로버트 패틴슨이 미쳤다(연기가 미쳤다)”는 말 외에는 다르게 설명이 되지 않는데요. 광기의 연기의 기존 고수와 신예 고수가 연기로 합을 맞추는 느낌이어서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심리 스릴러를 꼽으면 역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인데요. [셔터 아일랜드]의 경우 미친 남자의 속 사정을 들여다보지만 추리하는 느낌이 강해서 심리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요. 이 영화는 미쳐가는 과정을 따라가고 있어 심리적으로 힘든 영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상징, 암시가 상당히 강력한 영화인데요. 개인적으로 악몽과 같은 시간을 경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교훈은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과 고립되는 것은 마마 호환 보다 더 무섭다??? 사실 결혼도 잘 맞지 않는 사람과 하게 되면 지옥문이 열린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 영화는 일단 강심장보다는 호기심이 필요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강심장이 필요한 공포스러움과는 달리 다음 장면을 보고 싶은 호기심으로나 견딜 수 있는 곤혹스러운 상황과 여러 번 마주해야 되니 말입니다. 영화는 여러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니 도덕적이고, 착한 내용만 담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인데요.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객들의 선택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로버트 패틴슨과 윌럼 대포의 연기는 강렬하기만 한데요. 이들의 연기를 받쳐주는 영화의 속도와 무드 그리고 소리까지 매우 곤혹스럽습니다. 호불호를 떠나 이들의 연기는 가히 최고라고 말하게 되었는데요. 인어 목각 인형 ??? … 사쟈 슈나이더의 패로디(갑자기 뜬금 없는 웃음이…)에… 마지막 잔혹한 장면까지… 분…분명… 모두를 위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 마니아나 영화 공부를 하는 분들에게는 배우 둘의 초 울트라 강렬 연기에 비유와 상징 그리고 암시가 제대로 활용한 영화로 각인 될텐데요. 그래서… 여기까지… 끝. 갑자기??? 영화는 현재 btv에서 1,540원에 보실수 있습니다. 몬스터 헌터와 스푸트닉은 가격이 내려갈때 보려고 합니다. 영화를 어디서 보냐고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언급합니다. 그리고 고전은 거의 유튜브에서 보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튜브에 에드가 앨런 포우의 미완성 단편 “라이트하우스”를 읽어주는 영상이 있으니 확인해보세요. 묘하게 암울한 분위기는 닮은 것 같습니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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